책소개
≪족발≫은 1927년 1차 국공합작이 결렬되고 궈모뤄가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 그곳에서 창작한 작품을 모아 출판한 것이다. 이 책에는 열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맹자, 부인을 내쫓다(孟夫子出妻)>는 공자 사상의 계승자로 인정받아 아성(亞聖)으로 일컬어지는 맹자를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맹자는 공자를 본받아 수양을 쌓음으로써 성현이 되고자 뜻을 세웠지만, 아름다운 부인으로 말미암아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내쫓을 결심을 한다.
<공자님의 식사(孔夫子吃飯)>는 성인 공자를, 보통 사람의 감정을 지닌 한 인간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유세를 다니던 중 제후국 간에 벌어진 아귀다툼에 휘말려 곤궁한 처지가 되자 배고픔을 느낀 나머지 제자의 행동을 의심한다.
<칠원리 장자가 양나라로 유세를 가다(漆園吏游梁)>는 장자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칠원리라는 미관말직을 그만두고 송나라로 돌아온 장자가 생활고로 친구에게 쌀을 꾸려다가 거절당하고, 다시 친구가 재상으로 있는 양나라로 갔다가 봉변을 당한다.
<공자묘를 찾아온 마르크스(馬克思進文廟)>는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사상가를 동일한 공간과 시간에 등장시킨 흥미로운 작품이다. 마르크스가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공자의 사당을 방문한다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초패왕의 자살(楚覇王自殺)>은 유방과 싸우던 항우가, 결국 패하여 자살하고 만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항우가 유방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자신의 중대한 착각 때문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제나라 용사의 무예 대결(齊勇士比武)>은 춘추전국시대에 대국 연나라의 침략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도 힘을 합쳐 싸우지 않고 각자의 살을 파먹는 싸움을 벌이다 결국 둘 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제나라의 두 용사를 시적인 형태로 그려낸 작품이다.
<진시황의 임종(秦始皇將死)>에서 진시황은 즉위한 이래 저지른 갖가지 폭정을 스스로 반성한다. 무도한 통치자는 반드시 천하를 잃는다는 진리를 역설했다.
<사마천의 분기탱천(司馬遷發憤)>은 방대한 역사서를 쓴 사마천의 모습에서, 망명 기간에 중국 고대사 연구에 몰두했던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작품이다.
<노자의 입관기(柱下史入關)>는 노자의 은둔사상을 비판했다. 1920년대 격동기에 노자의 무위사상·은둔사상은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가의의 통곡(賈長沙痛哭)>은 나라를 위해 큰 뜻을 품었던 능력 있는 젊은이가 어처구니없게 죽음을 맞이한 것은 한 개인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사회와 국가에 있어서도 크나큰 손실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200자평
중국 문화사에서 천재로 평가받는 궈모뤄(1892~1978)의 역사 콩트집. 역사를 연구하다가 이를 제재로 삼은 콩트까지 썼다. 위인들이 체면치레에 급급한 면모를 보인다. ≪족발≫은 1927년 1차 국공합작 결렬 뒤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 그곳에서 출판한 책이다.
지은이
궈모뤄(郭沫若)는 1892년 중국 쓰촨성(四川省)에서 태어났다. 중국 현대문학의 대문호 루쉰과 쌍벽을 이루는 문학가이자 학자이자 정치가로, 중국 현대시사에서 화산 폭발이라 일컬어지는 시집 ≪여신(女神)≫을 남겼다. 중국 최초의 낭만주의 문학단체 ‘창조사’를 무대로 시와 희곡 작품을 많이 발표했으며, 정치적인 이유로 1928년부터 1937년까지 일본에 망명해 있던 동안 중국 고대사와 문자학에 대해 깊이 연구하여 많은 성과를 냈다.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정무원 부총리 등의 정부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1978년 사망했다.
옮긴이
신진호는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중국현대문학의 세계≫(1997, 현암사, 공저), ≪중국문학사의 이해≫(1998, 지영사), ≪민족혼으로 잠들다≫(1999, 학고재, 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에서의 한류에 관한 고찰>, <魯迅과 郭沫若의 역사소설 비교론>, <1930년대 夏衍 극작의 경향성>, <老舍의 화극에 나타난 현실인식과 역사의식>, <陳白塵의 ‘세한도’ 재평가> 등이 있다. ≪중국현대문학비평사≫(1994, 신아사), ≪郭沫若 희곡선≫(2005, 학고방, 공역), ≪田漢 희곡선≫(2006, 학고방, 공역), ≪老舍 희곡선≫(2006, 학고방, 공역), ≪夏衍 희곡선≫(2006, 학고방, 공역), ≪陳白塵 희곡선≫(2006, 학고방, 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연세대, 한양대, 명지대, 가천대에 출강하고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전형으로부터 말하다
맹자, 부인을 내쫓다 孟夫子出妻
공자님의 식사 孔夫子吃飯
칠원리 장자가 양나라로 유세를 가다 漆園吏游梁
공자묘를 찾아온 마르크스 馬克思進文廟
초패왕의 자살 楚覇王自殺
제나라 용사의 무예 대결 齊勇士比武
진시황의 임종 秦始皇將死
사마천의 분기탱천 司馬遷發憤
노자의 입관기 柱下史入關
가의의 통곡 賈長沙痛哭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선생님! 오늘 제가 만든 죽은 제사를 드리기에는 적당치 못합니다.”
“어째서 제사를 드리기에 적당치 못하다는 거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사 드릴 때 쓰는 음식은 반드시 깨끗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오늘 만든 죽은 깨끗하지 못하기에 제사 드리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고 한 것입니다.”
“왜 깨끗하지 못하다는 거냐?”
“제가 막 솥뚜껑을 열었을 때 솥 안으로 재가 조금 날아 들어갔습니다. 제가 재빨리 손가락으로 그것을 걷어내기는 했습니다만 그대로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 손가락을 데기도 하여 저는 그것을 제 입에 집어넣고야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서야 비로소 공자는 ‘아하!’ 하고 탄식을 터뜨렸다. 그는 재빨리 말꼬리를 잡아챘다.
“좋다, 좋아. 안회야. 너는 정말로 성자로구나. 나조차도 너를 따를 수가 없구나.”
공자는 이 말을 마치고 제자들에게 자기가 안회를 의심했다는 것과 안회를 시험했다는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공자는 이런 고백을 통해 스스로 느끼고 있던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잠재의식 속에서 위안을 느끼고 있었다.
“우두머리로서의 나의 존엄은 결코 손상되지 않았도다.”